커피 콩부인, Coffee Beanwife

커피 라이터, 콩부인입니다.

뉴욕의 가장 작고, 가장 훈훈한 카페 Third Rail Coff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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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가장 작고, 가장 훈훈한 카페 Third Rail Coffee


저녁 6시. 왜 이렇게 환한걸까? 날이 더워 빨리 좀 해가 졌으면…하는 바램따윈 무시 당하기 딱 좋은 초여름 초저녁의 뉴욕. 워싱턴 스퀘어 파크를 가로질러 뉴욕에서 가장 작은 카페 중 하나인 그 곳을 찾아 가는 길. 처음 걸어보는 공원의 분위기가 심상치않다. 그 큰 공원 여기저기에 와글와글 모여 각자의 놀이에 한창인 오만가지 군상들. 그리고 공원 한 가운데 분수대에서 물놀이를 하며 더위를 식히는 어린이들….과 아저씨! =_=;; 별의별 사람구경에 정신줄 놓기 쉬운 재밌는 공원을 가로지르고나니 뭔가 살아 숨쉬는 기운이 잔뜩 느껴지는 작은 골목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얼마 걷지않아 아-기다리고기다리던! Third Rail Coffee앞.

만나는 뉴욕 커피러버들에게 ‘맨하탄에 괜찮은 커피집이 어디야?’라고 물을 때마다 항상 공통분모처럼 언급되던 카페. 모두들 ‘작지만 정말 괜찮아’라고 말해줬던 곳. 그래, 정말 작구나… 하지만 가게 앞에 놓인 짤막한 벤치에 앉아 커피와 책을 즐기고 있는 한 남자의 여유로움이 눈에 띈다. 아마 그를 봤다면 ‘어디 나도 한 번?’하는 생각에 그 앞을 지나던 총총걸음들을 한 번씩은 잡아 세웠을 것 같다.

한 발짝 가게 안에 들어서니 바리스타와 손님이 소소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훈훈한 분위기. 둘러보니 작지만 꽤 세련되고 감각적인 색감이 마음에 든다. ‘가게 참 좋구나…’라고 말하려던 순간, 갑자기 덥쳐오는 더운 공기. 그리고 나도 모르게 가늘게 터져나온 말. ‘헉- 쏘 핫!’ 나의 갑작스런 탄성에 앞다투어 해명하려는 사람들. ‘미안, 지금 에어컨 수리중이라서…’ 더울 새도 없이 괜한 미안함에 호탕하게 웃어보이는 나. 하지만 속으론 ‘제발 땀방울만 흐르지만 않으면 좋겠어…난 더위에 너무 약하거든…’

잠시 아이스커피의 유혹을 떨쳐버리고, 그닥 흔치않은 메뉴 코르타도(Cortado:마키아토와 카푸치노의 중간 사이즈로 에스프레소에 스팀밀크가 1:1의 비율로 들어가는 커피메뉴)를 주문한다. 주문이 끝나자 나도 모르게 한 손은 이미 부채질 시작. 그런 나를 아까부터 계속 미안한 기색으로 지켜보던 한 젊은 아저씨(?)가 멋적게 자꾸 말을 건넨다. ‘참 덥지?’ ‘어디서 왔니?’등등… 뉴욕에서 드디어 내 매력을 인정받는 날인가? 하며 김칫국을 마시고는 ‘이 카페엔 자주 오세요?’라는 질문을 던지자마자 돌아오는 대답. ‘네. 제가 여기 주인입니다.’ =_=;; 모든게 명확해지는 순간. 아아- 다행히 때마침 나와 준 나의 코르타도 한 잔이 어찌나 반갑던지.

와아- 에스프레소의 갈색과 보랏빛 잔이 이토록 잘 어울릴 줄이야. 스팀우유와 에스프레소가 환상의 비율로 한치의 오차없이 꽉 채워진 작은 잔. 그리고 그 와중에 라떼아트까지…벨벳 우유거품과 에스프레소의 색, 그리고 잔의 느낌으로 확신하건데…이건 보나마나 맛있다! 한껏 상기된 미소를 띄우며 이마에 땀방울 맺히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사진부터 찍어대는 나. 그리고는 재빨리 완소 코르타도를 들고 선풍기를 독차지할 자리에 안착. 휴우- 대체 이게 얼마만의 후덥한 선풍기 바람인지…

라떼아트 망가뜨리기가 안타까워 눈 질끈 감고 우유거품을 스푼으로 살짝 밀어낸다. 그리고 잘 섞인 에스프레소와 우유의 첫 모금을 마신다. 인텔리젠시아 ‘블랙캣’커피 특유의 달콤 쌉쏘롬한 에스프레소가 곱게 뎁혀진 우유와 잘 섞여 목넘김이 너무나 부드럽다. 설탕이나 우유를 추가하고 싶은 유혹 따위는 전혀 생길 틈 없는 맛의 밸런스. 땀이 송글송글 맺힘에도 이 따뜻한 커피의 첫 모금이 어느새 나를 카페 콘 레체(커피에 고소한 스팀우유를 섞어 마시는 스페인식 커피)의 나라, 스페인의 한 카페로 인도하는 듯 하다. 스페인 여행 이후 오랜동안 목말라했던 이 부드러운 커피 한 잔. 땀 흘려가며 마시는 보람이 있구나…흑흑-

혼자 우는듯 웃는듯 서너모금을 마시고 나니 아까 그 젊은 주인아저씨가 씽긋하더니 내 테이블에 합석한다. ‘앗-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 걸까? 아…아무래도 취재의 기운을 느꼈나보다.’ 역시 주인정신! -_-;; 서글서글한 훈남풍 주인아저씨의 나긋한 말투가 편안해서였을까? 어느새 흐르는 땀 부끄러운지 모르고 작은 테이블에 마주앉아 커피에 대해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작은 공간의 작은 테이블만이 주는 이 친밀감. 참 오랜만이다. 불과 문을 연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이 작은 카페가 뉴욕 커피인들의 입소문을 탄 이유. 아마  8할은 좋은 원두(미국 로스터 양대산맥인 Stumptown과 Intelligentsia의 커피만 취급)로 제대로 만드는 커피 때문이겠지만, 2할 이상은 이 훈남 주인이 만든 이토록 따뜻한 카페 분위기 때문이 아닐런지?

한국의 커피잡지에 소개하고 싶다고하니 더 큰 관심을 보이는 훈남 주인. 뉴욕타임즈 같은 유명 미디어에 이미 많이 언급되었으면서도 먼 나라의 작은 관심에도 이토록 반겨주다니…이 곳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더 훈훈해지는 내 마음. 코르타도 말고 자랑하고 싶은 메뉴가 있냐고 물으니 케멕스로 내리는 코스타리카 커피를 주저없이 권한다. 주문도 직접 넣어주고 바리스타에게 사진찍을 시간까지 할해해 줄 것을 부탁해주는 센스까지. 뉴욕의 맛좋고 유명한 카페를 많이 다녀봤지만 이 작고 더운 공간에 엉덩이에 땀차도록 오래도록 앉아있고 싶을 줄이야…곧 땀으로 범벅되어 상기된 채로 정성스레 케멕스 커피를 내려주는 바리스타와 차분히 내려지는 커피를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이 커피 역시 분명히 맛있을거란 걸!

하얗고 늘씬한 머그에 까맣게 가득 내려진 코스타리카 커피를 들고 카페 밖에 놓인 작은 벤치에 앉아본다. 앗- 아까 앉아있던 그 아저씨가 아직 책을 보고 계신다. 친절히 눈인사를 하더니…내게 커피맛이 어떠냐며 물어온다. 말해 무엇하냐며 당연히 맛있다고 대답한다. 묵직한 코스타리카 커피가 케멕스 드리퍼로 인해 훨씬 가볍고 깔끔한 여름 커피로 다시 태어난 듯한 느낌이랄까… 초저녁 벤치에 앉아 홀짝이기엔 더할 나위 없다.

스스럼없이 자신이 여기 단골이라며 카페 칭찬을 늘어놓기 시작하는 아저씨.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니라면 적어도30분간 내가 느낀 이 카페와 커피맛 그대로를 말하고 있었다. 단골의 증언으로 바로 ‘뉴욕에서 가장 훈훈한 카페’로 인증되는 순간! 찰칵~

카페 안보다 훨씬 시원해진 초저녁 맨하탄의 한 작은 골목. 단골 아저씨와 한참 이런저런 커피 수다를 떨다보니 어느덧 흘러흘러 ‘아마추어’와 ‘프로’의 이야기로… 아직 스스로를 ‘프로’라고 말하긴 좀 쑥쓰럽다고 내가 말하자 아저씨가 내게 해준 말. ‘아마추어’의 어원을 거슬러보면 ‘LOVE’란 의미를 갖고있고, 실제로 같은 일을 해도 ‘아마추어’가 그 일을 훨씬 더 사랑하는 마음으로 해내기 때문에 무조건 ‘아마추어’가 ‘프로’보다 더 좋은거란다.

아- 맨하탄 한 골목에서 가슴 정중앙에 날아온 강펀치 하나. 울컥하고 행복하다. 그리고 생각한다. 지금 여기  아낌없이 좋은 이야기를 전해주는 단골 아저씨와 먼 곳에서 이 곳까지 찾아온 나, 그리고 이 작은 카페를 무한애정으로 꾸려가는 주인 아저씨까지….

우린 모두, 아직 ‘행복한 아마추어’라고.

주소: 240 Sullivan Street, New York, NY

찾아가기: NYU가 위치한 Washington Square Park 에서 Sullivan st.을 찾아 나오면 카페가 바로 보여요.‎

Point: 커피를 테이크아웃해서 워싱턴 스퀘어 공원에서 사람구경하며 마시는 것도 아주 좋은생각이에요.^^b

*숨어있는 카페들을 소개하는 커피잡지, ‘커피가게’ 7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골라읽는 재미가 있는 콩부인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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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Respon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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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트위터 통해서 와봤어요.
    너무나 가고 싶은 훈훈한 카페네요.
    잘 봤습니다.

    catbuscompany

    April 1, 2011 at 4:01 am

    • 저도 뉴욕에서 가장 아끼는 카페에요. ^^
      트친이라고 하시니 더 반갑네요!

      Beanwife

      April 1, 2011 at 4:34 pm

  2. 다음달에 뉴욕에 가는데 꼭 가봐야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라테와 마끼야또 사이로 혼자 잘 만들어 마시는데 같은 취향을 가진 메뉴가 있다니 신기하네요… 전 그냥 라테인에 우유양을 적게 넣는 거지만요…

    그리고 콩부인님이 전문가시니 초면이지만 한가지 여쭤보고 싶은게 있습니다.
    혹시 인텔리젠시아나 스텀타운, 카운터컬쳐 이 세곳의 원두를 쓰지 않고 커피가 맛있는
    카페를 소개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조나 띵크도 제외하고요.. 죄송합니다..

    카페탐방 갈 곳을 리스트업해놨는데 한 곳 한 곳 조사하다보니 대부분 위 세 곳의 원두를 쓰고 있더라고요…
    우리나라처럼 각 카페마다 로스팅을 하는 곳은 많지 않나 봅니다. ㅠㅠ
    구글이랑 옐프랑 로스터리 카페 검색해도 나오는 곳이 많지 않네요.ㅠㅠ

    yujin

    October 2, 2011 at 1:10 pm

    • 안녕하세요. 그럼 인텔리젠시아, 스텀타운, 카운터컬쳐를 제외한 커피를 사용하는 카페들 추천 드릴께요.

      일단 제가 예전에 포스트했던 뉴욕 카페 중 Cafe GrumpyNienth Street Espresso가 자체 로스팅한 커피를 사용하고 있고 꼭 가보실만 합니다. 특히 Cafe Grumpy의 경우 브루클린에 있는 샵에서 로스팅을 하기 때문에 그쪽으로 가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그리고 RBC NYC의 경우는 미국 내 다른 여러 지역의 커피를 사용하는 멀티 로스터 샵이라 미국의 다른 지역의 커피들을 맛보실 수 있구요. 블로그에 포스트하지 않은 곳 중에 맨하탄과 브루클린에 있는 Gimme! Coffee와 브루클린의 Blue Bottle Coffee도 자체 로스팅한 커피를 사용하는 좋은 카페들입니다.

      뉴욕 맨하탄에서는 비싼 임대료 때문인지 샵들의 크기도 작고 로스터기를 들여놓은 곳은 많지 않습니다. 특히 화재 경보가 민감한 미국이라 여러 제약이 있는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맨하탄 외 지역에는 공간이 넉넉한 멋진 로스터리 카페가 몇군데 있습니다. 앞에서 추천한 카페 그럼피와 블루바틀의 경우 브루클린에서 꼭 가볼만한 로스터리 카페이니 한번 들러보세요.

      커피로 더욱 즐거운 여행 되시길!

      Beanwife

      October 20, 2011 at 3:40 pm

      • 답글을 지금 확인했어요~~~ 지금 한국 들어왔는데 다행히 위의 소개해주신 곳들 모두 가봤네요!! 블루바틀도 멋졌지만 개인적으로는 RBC NYC 너무 좋더라고요. 제가 간날은 THIRD COFFEE를 사용했는데 커피도 맛있고 분위기도 너무 좋았어요… 혹시 소호나 트라이베카 LA COLOMBE 가보셨는지요? 개인적으로는 요기 커피도 특이해서 좋았어요.
        그런데 하루에도 몇잔씩 마시니 나중엔 커피맛 잘 모르겠더라고요.. 커피 그냥 마시기 싫고 그냥 우유랑 꿀이랑 막 넣어 마시고, 티 마시고.. ㅎㅎ.
        답장 감사드립니다. 커피 공부하러 자주 들를께요~~~

        yujin

        November 2, 2011 at 3:11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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