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콩부인, Coffee Beanwife

커피 라이터, 콩부인입니다.

Abraço를 추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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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그랬다. 스타벅스 화장실 보다 작은 곳이니 공간에 대한 기대일랑 접으라고… 하지만 지금 누가 나에게 이 곳에 대해 묻는다면 그곳의 커피 만큼이나 끈적하고 진한 에스프레소 같은 공간이라고 소개하고 싶다.

타임스퀘어에선 쉽게 마주치기 힘든, 이스트 빌리지(East Village)의 젊은 훈남훈녀들과 눈인사를 할 수 있는 곳 abraço (아브라수) 인 뉴욕.

포르투갈 어로 Hug(포옹)이란 뜻의 이 작은 카페는 사실 카페라기 보다는 인기 좋은 ‘커피 스탠딩바’라고 부르는게 맞을지 모르겠다. 그 앞에 서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에 카페가 통째로 가려지기 일쑤니…

인파를 뚫고 카페 안으로 첫 발을 들여 놓자마자 스스로 이방인이란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던 건, 아마도 이 작은 공간에서 뿜어져 나오는 타인들의 카페인 가득한 에너지나 혈기 따위에 순간 압도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진한 커피를 마시며 불과 5cm도 안되는 간격에 선남선녀들이 옷깃을 마구 스치며, 잔에 맥주 대신 커피가 들었을 뿐인 뉴욕의 어느 작은 바에 와 있는 듯한 기분.

흔치 않은 에스프레소 메뉴인 코르타도(Cortado: 에스프레소와 스팀밀크가 1:1에서 1:2 정도 비율인 일종의 미니라떼)와, 베이커리 쇼윈도에 딱 하나 남아있는 올리브오일 케잌이 반가워 얼른 주문을 한다. 샌프란시스코의 블루바틀(Blue Bottle)커피에서 일했었다는 주인장 때문인지 그곳에서 쓰이는 잔과 비슷한 ‘지브롤터’유리잔과, 유기농 포스를 강하게 풍기는 달지 않은 올리브오일 케잌을 들고 키친타올 한칸 정도나 될법한 공간을 간신히 확보했다. 다행히 어느 누구도 불편한 기색은 없지만, 먹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어디서 왔니?’라며 말을 걸어올 것만 같아 험하게 먹진 못하겠다. 하지만 카운터컬쳐(Counter Culture:미 동부지역의 유명 커피 로스터) 커피 특유의 짜릿하면서도 짙은 에스프레소 향과 올리브오일 케잌의 적당히 기름지고 찰진 식감이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 통에 나의 코르타도는 금새 동이 나버렸다.

덕분에 유난히 많이들 주문하던 아이스 커피를 힐끔거리다 결국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한잔 더!’를 외치고 마는 나. 작은 바에 꽉 차 보이는 몸집의 바리스타가 꽤 기뻐하며 맛있게 뽑아주겠다고 큰소리를 친다. 그리고 잠시후, 콜라보다도 진한 색감의 찐득한 아이스아메리카노가 등장. 보는 것 만으로도 카페인 지수가 상승하는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첫 모금에 캬아~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 곳의 커피는 참 진하다. 작은 공간에서 정신없이 커피를 뽑고 내리는 사람들의 열정만큼, 그리고 이 곳을 찾는 이스트빌리지 젊은이들의 사랑과 고민의 가짓수 만큼…분명 이곳의 사람들 모두 커피, 그 이상의 무언가에 중독되어 있는 게 분명하다.

생각해보니 난 이곳의 진한 커피를 뉴욕에 올 때마다 두 잔씩 마셨다. 엉덩이 붙일 공간 하나 없는 그 좁은 곳에서, 종류별로 꼭 두잔씩. 그리고 그 때마다 내 커피잔 너머엔 아름다운 커플들이 있었다. 그들이 일행인지, 그냥 작은 테이블을 함께 나눠쓰고 있던 타인들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그 곳의 농도 짙은 커피를 홀짝이며 바라보기 좋았다는 것 외엔…

매년 봄 가을이 되면 뉴욕이 더욱 고프다. 특히 그맘때 쯤 더욱 더 생기발랄한 뉴욕의 소호 카페들과, 그 중에서도 유난히 짙고 아름다웠던 아브라쇼의 다양한 청춘들이.

그 곳의 커피처럼 끈적하고 진한 에스프레소를 한 잔 마신 것도 같고, 또 커피향 가득한 그 누군가와 진한 포옹을 한 것도 같은 여운이 남는 곳. 그 흔한 무선 인터넷도 책 한권 펼쳐볼 공간도 주지 않는 이 곳은, 어쩌면 순수하게 ‘커피와 사람들’을 이어주기 위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혹시 언젠가 아브라쇼에 가게 된다면 스마트폰은 잠시 꺼두자. 진한 포옹에 방해가 될 수도 있을테니.

Abraço Espresso

86 East 7th Street
New York, NY 10003
(212) 388-9731

Subway: Astor Pl

http://abraconyc.com/

*캘리포니아에서 뉴욕의 봄을 그리워 하며 썼던 해묵은 글입니다. 감성 돋는 올가을에 다시 간다면 가슴이 터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골라읽는 재미가 있는 콩부인 글 목록”

Written by Beanwife

September 5, 2012 at 9:51 pm

4 Respon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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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 일년 반쯤 “뉴욕 커피탐방기 #1.커피 인디애나 존스” 를 읽고 형광펜으로 너덜대는 지도를 들고 커피 사냥을 다니던 때가 생각 납니다. 바글바글 대던 가게를 들어 섰을때의 “너무 작아서” 남 다른 첫 느낌 (손님에게 공간 배려심 없는 거만함: 주방이 가게의 2/3를 차지함) 그리고 이름의 헷갈림 오는 신경질.. “ç”는 뭐지? S야 C야…~~! (지금까지도 아브라코가 난 좋다.) 이런 무시무시한 지극히 개인적인 선입견에도 불구하고도 커피 맛도 모르는 Deli-Lover가 침튀기면서 그곳의 Espresso를 추천해 버리는 이중인격자가 되어버렸습니다. 나 또한 이곳 저곳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초심-커피 맛을 잊어버렸다면 지난날 스승님의 회초리 처럼 찾아가는 곳입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2주전까지) Counter Culture coffee를 안쓰고 Stumptown Coffee를 쓰더군요. 물어보니 다양한 커피에 대한 시도 라고 하더군요. 그래도 역시 Stumptown coffee 는 Ace Hotel에서 창밖 거리의 아랍식당을 보면서 마셔야 좋은것 같네요…

    Hae W Jeon (@Hae_W_Jeon)

    September 9, 2012 at 11:58 pm

    • 그 사이 뉴욕은 또 얼마나 많이 변했을런지…아브라쇼가 여전히 그 자리를 잘 지켜가고 있다니 그저 기쁜 소식이네요. ^^

      Beanwife

      September 30, 2012 at 7:58 pm

  2. 아브라쇼에 원래 어닝이 있었나요?? 작년엔 없었던 것 같은뎅…. 요새 몸이 자꾸 미치미치한데 아브라쇼 코르타도 한 잔 마시면 정신 번쩍 들 것 같아요.
    콩부인님 혹시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청담동에 콩부인이라는 카페가 새로 생겼어요… 관계자 분이면 괜찮은데 혹시 아니라면… 그냥 알려 드리고 싶었어요^^

    yujin

    September 25, 2012 at 12:15 pm

    • 이 글을 쓸 때가 1년도 넘었으니 그 사이 소식은 제가 업데이트 받아야 할 것 같네요. ^^

      아참, 그리고 콩부인 카페 소식은 여기저기서 말씀해주셔서 알고 있습니다. 관계자는 아니지만 저도 궁금한 마음에 다음엔 한 번 들러볼까 해요. 크크. 제보 감사합니다. ^^;;

      Beanwife

      September 30, 2012 at 8:0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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