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콩부인, Coffee Beanwife

커피 라이터, 콩부인입니다.

Terroir Coffee(테루아커피) 방문기 2탄. ‘George Howell과 한 테이블에서 커핑스푼을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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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rroir Coffee 회사 구석구석 알찬 구경(방문기 1탄)을 하고 나니 어느덧 커핑룸엔 George의 딸이자 현재 Terroir의 커피 소싱 디렉터(Director of Coffee Sourcing)를 맡고 있는 Jennifer Howell이 콜롬비아와 에티오피아 커피로 커핑 테이블을 준비해 놓았다. 아.. 손발이 척척 맞는 훈훈한 커피 가족의 모습.

사실 이번 방문의 가장 큰 설레임은 George Howell이 커피를 테이스팅 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과 한 테이블에서 같이 커핑스푼을 드는 호사를 누리는 것. 최고의 커피를 찾아 경매하는 Cup of Excellence프로그램의 창단멤버이자 날카로운 미각과 오랜 경력의 커피 테이스터와 한 테이블에서 커피 맛을 보고 평가할 수 있다니…준비된 커핑(Cupping) 테이블을 보자 내 심장 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커핑 테이블엔 상석이 없다.

딸 Jennifer가 준비해 놓은 커핑잔들에 자연스럽게 직접 끓인 물을 붓기 시작하는 George. 한국인의 정서로 아버지벌 되는 분이 내 커피잔에까지 일일이 물을 따라주는 걸 보고만 있는게 그닥 편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주전자를 뺏을 순 없는 일. 사실 커핑 테이블엔 니잔 내잔, 니자리 내자리가 없는 말그대로 라운드 테이블이 아니던가. 게다가 상석은 커녕 서로 같은 컵에 스푼을 넣었다 뺐다 하며 맛에 대한 교감으로 구성 된 자리,  커피로 모두에게 열려있는 이 테이블을 손수 준비하는 George 와 청바지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하나라도 더 배우려 묵묵히 그의 모습을 눈에 담는 나.

이번 커핑의 특이한 점은 기존 커핑 형식대로 물을 잔에 가득 붓는 것이 아닌 약 3분의 1은 남겨두고 물을 부어 아로마(Aroma)를 평가하는 것이었다. George의 설명에 의하면 외부에서 쓰이는 공식적인 방법은 아니지만, 처음 아로마 확인을 한 후에 남은 3분의 1을 다시 뜨거운 물로 채우면 커피 맛이 더 잘 우러나서 맛을 확인하는 다음단계가 좀 더 수월하기 때문에 내부 커핑시에는 이렇게 한다고 한다. 커피 추출 후에 뜨거운 물을 살짝 부어 줄 때 커피의 맛과 향이 좀 더 살아나는 듯한 느낌을 좋아하는 나로써는 심히 공감이 가는 방법이기도 했다.

며느리도 모르는 블라인드 테이스팅

먼저 콜롬비아산 원두 5종류로 구성된 테이블의 아로마 부터 확인하기 시작. 가운데 놓인 접시 바닥에 커피이름을 적은 포스트잇을 숨겨놓고 평가가 끝난 후 확인하는 블라인드 테이스팅(Blind tasting). 그의 회사 내 테이스팅은 항상 이렇게 한다고 한다.  게다가 이런저런 실험을 좋아하는 그가 오늘 테이블엔 Parchment(파치먼트: 생두를 감싸는 껍질로 보통 원산지에서 출하 직전에 벗겨냄) 채로 GrainPro(그레인프로: 생두를 원산지에서 출하할때 쓰는 여러 포장 방법 중 하나로, 좀 더 오랜동안 보관이 가능하다고 하여 최근 각광받는 생두 포장백)에 담겨 배송된 실험용 콜롬비아 원두, 그리고 Terroir에서 2년전에 얼려서 보관해왔던 에티오피아 원두를 포함 시킨 것. 그리고 그게 몇 번 컵인지는 우리 중 어느 누구도 모르는 상황.

힐끔힐끔 George의 컵핑하는 모습을 훔쳐보며 나도 아로마를 맡기 시작. 물을 덜 부은 덕에 코를 한껏 컵에 들이대고 젖은 커피의 향을 깊이 음미해 볼 수 있었다. 사실 아직까지는 내 마음을 사로잡은 콜롬비아 커피를 맛본 적이 없었기에 이번 테이블에서 하나 건져보겠다는 욕심으로 의욕적으로 냄새를 맡는 나. 나름 개코라 자신하는 터라 아로마 만큼은 확실히 평가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SCAA 커핑폼과는 달리 COE 커핑폼에는 아로마가 최종 점수에는 포함되지는 않았다. George 설명으로는 커피의 아로마의 경우 때와 장소의 여러 변수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점수에서는 제외했다고… 하긴 점수 0.1점에 울고 웃을 COE 커피 평가를 생각하면 일리있는 말이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선 같은 원산지의 컵 2번과 4번이 꽤 괜찮은 향을 내고 있었다.

아로마 평가가 끝나고 컵에 가득 물을 붓고 난 후 떠오른 커피 찌꺼기를 다시 George와 Jennifer가 나란히 치우기 시작하는데…난 왜 이런 가족의 모습만 보면 마음이 훈훈한지. 이번엔 팔 걷고 나도 동참했다. 그리고 잠시 뒤 이어지는 테이스팅.  ‘쉬릭~’ 바람소리 같은George의 숙련된 커핑 소리가 울려 퍼진다. 나도 최대한 신경써서 혀 위에 커피를 뿌려보고자 애쓰지만 저 소리가 나려면 아직 먼 것 같다. Jennifer까지 동참해서 함께 맛을 보았고 한차례 커핑 이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데…생각보다 시끄럽다. 하하- 보통 대외 커핑에선 커피를 slurping(슬러핑:크게 소리내어 음식물을 흡입하는 동작)하는 것 외에 대화가 그닥 없는 것에 비해 여긴 좀 더 캐쥬얼한 분위기랄까. 꽤 수다스러운 분위기였다. 그런 나를 눈치챈 George가 본인은 그닥 조용한 커퍼(cupper)는 아니라며 웃음을 던진다. 사실…딱딱하지 않은 분위기 덕분에 나도 어렵지 않게 내 의견을 좀 더 편안하게 공유할 수 있었다.

한차례 맛을 보고 의견을 나누어 보니 다들 2번 컵 말고는 그닥 인상깊지 않은 듯 했다. 좋은 콜롬비아 커피를 많이 접해보지 못한 난 2번 컵의 과일의 달달함과 적당한 신맛, 그리고 내가 유난히 열광하는 혀를 시럽으로 코팅하는 듯한 묵직하고 부드러운 마우스필에 내심 흡족해 하고 있었지만 George는 진짜 좋은 콜롬비아 원두에 비하면 이건 그냥 그렇다는 말로 콜롬비아 커피에 대한 나의 기대감을 한층 높여주었다. 이후 시간이 지나 살짝 식은 커피를 두차례 이상 더 맛보고 난 후에 각자 커핑 폼에 결과를 적었고, George의 폼은 아래와 같았다.

아직 난 항목별 점수도 채 다 적지 못했는데 George는 이미 최종 점수로 평가 완료한 상태. 몇십년의 경력이라는 것이 이런건가 싶다. 커피 향과 맛 몇 모금으로 그 커피의 최종 점수를 바로 매길 수 있다니…내 것과 비교하기에는 그 경력의 격차가 너무 커서 베껴 적을만한 것도 없어 보였다. Orz…

흥미로운건 우리 모두 2번 컵에 가장 높은 점수를 주었는데 그 컵이 바로 George가 심어 놓은 파치먼트(parchment) 실험용 커피였던 것. 2번과 4번 중 하나는 파치먼트 채로 Grainpro에 포장되어 온 것이고 하나는 기존 생두들 처럼 파치먼트를 벗겨낸 상태로  Grainpro에 담겨서 온 것이었다. 난 상식적으로 파치먼트 에 한겹 더 싸여서 배송된 커피가 당연히 더 맛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George는 신중했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나서 그가 내게 트위터로 알려준 결과는…

파치먼트 없이 Grainpro에 담겨 온 생두가 더 맛있었다는 것! 아마 그는 어느정도 이 의외의 결과를 어느정도 예상하고 확인하는 작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덕분에 이런 내 상식을 뒤집는 결과를 직접 체험하고 나니 뭔가 좀 더 신중해진 기분이랄까?

그의 커피 실험은 계속된다.

콜롬비아 커피들에 전체적으로 약간 실망한 George. 이번엔 뭔가 흥분된 표정으로 에티오피아 커피 두종류 커핑을 시작했다. 같은 농장의 커피지만 둘 중 하나는 경작이 좋았던 2년전에 사서 얼려놓았던 생두를 최근에 로스팅 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올해 수확된 것. 커핑이 시작되자 아로마 평가에서 사실 게임은 거의 끝이 났다. 이미 두 커피의 아로마의 격차는 눈에 띄게 큰 상태. 하나는 향기로운 에티오피아 커피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었고 다른 컵은 아로마의 정도와 질 모두 별로였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맛에서도 하나는 신선하고 하나는 김빠진 콜라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의 큰 차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현격한 차이라면 올해 수확된 커피가 당연히 좋은 쪽이 아니었겠느냐는 나에 비해 George는 여전히 신중한 자세. 그리고 본인도 이렇게 얼린 원두와 비교 커핑을 할 때 마다 결과를 보기 전에는 꽤 긴장이 된다고 했다. 긴장된 마음으로 중앙에 놓은 접시를 들어 이름을 확인하는데…

결과는…정 반대였다.

번쩍 두 손을 치켜 올리고 큰 소리로 흥분해 외치던  George Howell. 만세 삼창이라도 부르는 것 같았다. >.<  2년 전 얼려 놓았던 커피의 맛이 같은 농장의 올해 커피 보다 그 맛이 월등히 좋았던 것. 사실 따지고 들자면 올해가 꽤나 흉작인 반면 2년 전엔 COE급의 커피를 배출했던 해일 수도 있었을 것이고, 또 이를 알고 일부러 보여주기 식의 세팅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내가 직접 코와 혀로 맛본, 그 2년간 밀봉된 채로 냉동창고에 얼려 있었다던 커피의 맛은 여느 커피들 이상으로 달고 향기로웠다. 2년 전 커피라는 결과를 듣고 되새겨 보니 신맛이 약간 누그러진 듯한 느낌은 있었지만 여전히 맛좋은 커피였음엔 분명했다. 오히려 2년 전 그 커피의 맛이 얼마나 좋았을지 궁금할 정도…

그사이 꽤 많이 기뻐하던 George의 눈빛과 표정이 바뀌어 있었다. 확신과 자신감에 가득찬 사람의 눈빛과 표정으로! 하하- 그런 솔직한 모습이 난 왜 그리 재밌고 또 정이 가던지… 그리고 한편으로 이런 그의 실험들이 계속되기를 바랬다. 완벽한 커피 빈티지를 다시 한 번 꿈꿔 보는 나.

그렇게 재밌는 두 가지의 실험결과가 나왔던 커핑은 이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바쁜 아침에 마음을 담은 소중한 시간을 할애해 준 그의 배려에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감사함을 느낀다.

게다가 다음 미팅에 참석하러 가기 전, 커피하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할 맛이라며 맛보여 준 자연산 Molasses. 우리말로는 당밀인데 커피 맛을 평가하는 표현 중 하나였으나 그간 맛볼 기회가 없었던 내게는 단번에 그 맛을 깨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거친 질감의 엿과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달달하니 꽤 맛있었다. ^^; 그리고 그 주간의 스페셜 커피였던 올해 하와이 최고 커피인 Rusty’s Farm의 Ka’u까지 한봉지 선물 받다니… 돌아와서는 꿀처럼 달달했던 이 ka’u커피를 마실 때마다 Molasses의 맛을 느꼈던 것 같다. 과연 George는 이걸 알고 그날 내게 Molasses 맛을 보여준 걸까?

Terroir Coffee 방문기 끝.

*George Howell Blog:http://blog.terroircoffee.com/

*Terroir 커피는 미국의 여느 로스터에 비해서도 light roast 으로 유명합니다. 생두 품질에 집중하고 그 원두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리기 위한 로스팅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본인들은 light roast 라고 부르기 보다는 ‘full-flavor roast’라고 호칭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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