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콩부인, Coffee Beanwife

커피 라이터, 콩부인입니다.

비엔나 월드 커피 이벤트: 커피의 고전과 현대가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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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한 공간에 모자랄 염려가 없어 보이는 수많은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유럽인들이 사랑해 마지 않는 야외 좌석들. 게다가 오픈한지 100년이 넘은 카페에 모여 앉아 자정까지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어볼만 한 도시 비엔나. 10여년 전 배낭여행 길엔 그저 모차르트와 소년 합창단의 음악 도시로만 생각했던 비엔나를 커피의 도시로 다시 찾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 17세기 오스만 제국이 오스트리아에서 후퇴한 이후 Franz Kolschitsky가 터키군이 놓고 간 커피를 가지고 문을 연 비엔나의 첫 카페 이름이 ‘블루 바틀Blue Bottle’이라고 한다. 게다가, 그가 터키식 커피의 가루 찌꺼기가 싫어 필터로 걸러내기 시작한 것도 이 때 부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럽에서는 베니스 못지 않게 긴 커피와 카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2012년 6월, 그 오랜 커피 문화가 곳곳에 짙게 배어 있는 비엔나로 트렌드를 앞선 커피를 즐기는 세계의 바리스타들과 커피인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과연 오랜 건축물 사이사이에 자리 잡은 비엔나의 모던 빌딩들처럼, 고전과 현대의 커피 문화가 잘 섞일 수 있을지 문득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photo credit: Amanda Wilson and Rick Forrestal

커피 세계 선수권 대회

매년 전 세계의 바리스타들과 커피인들의 몸과 마음을 들썩이게 만드는 행사가 있다면, 바로 이 월드 커피 이벤트World Coffee Events가 아닐까 한다. 세계 각국 대표로 선발된 커피인들이 매년 한자리에 모여 다양한 종목의 커피 대회에 출전하여, 실력을 선보이고 우승자를 가리는 일종의 ‘커피 세계 선수권 대회’와도 같기 때문이다. 기호 식품인 커피를 가지고 어떻게 승부를 겨룰지에 대해 의구심부터 갖는 이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1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쉽World Barista Championship을 비롯한 종목별 대회의 규칙과 심사 기준이 여느 스포츠 대회 못지 않게 까다롭고, 대회 전 종일 워크샵을 통해 심사위원들의 자질을 다시 한번 검증하고 평가에도 상당히 신경 쓰고 있는 걸 보면, 요리 대회 보다는 마치 피겨 같은 예술 스포츠 경기쪽에 가깝지 않은가 생각된다. 이 총 7개 종목의 세계 커피 대회 중, 바리스타 챔피언쉽을 비롯한 5개 종목이 오스트리아 비엔나 전시장 메세Messe 에서 6월 12일부터 15일까지 4일간, 유럽 스페셜티 커피 연합(SCAE)이 주최하는 커피 박람회와 함께 개최되었다. 바로 그 현장에 있었던 필자의 눈과 사진기의 렌즈를 통해 대회 소식을 전한다.

Photo credit: Amanda Wilson and Rick Forrestal

과테말라 바리스타 Raul Rodas, 친구 농장의 커피로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이 되다!

이번 비엔나에서 개최된 총 5개 세계 커피 대회 중, 가장 많은 참가자가 몰렸던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쉽. 그 역사가 가장 오래된 세계 커피 대회로 15분 안에 에스프레소 4잔, 카푸치노 4잔, 창작음료 4잔을 만들어 평가 받는다. 총 54개국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대회 전날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해 관중석에 앉아 자신이 설 무대를 바라보는 모습을 보니 다들 긴장과 설레임이 뒤범벅 된 표정이다. 이날 한국 대표로 참가한 커피렉Coffee Lec의 류연주 바리스타의 경우 예선전 시연이 바로 다음날 이른 아침이라 약간 긴장한 듯 보였지만, 실제 대회에서는 자신감 넘치면서도 부드러운 진행으로 심사위원들의 미소를 자아냈고, 특히 눈을 가리고 맛에 집중하도록 안내하는 독특한 시연으로 시선을 모았다.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쉽 혹은 WBC라고도 불리는 이 대회는 예선전을 거쳐 12인의 준결승 , 그리고 6인의 결승전으로 총 4일간 진행된다. 이번 대회에서 그 누구보다 가장 큰 관심을 모았던 선수는 바로 과테말라 대표 Raul Rodas였다. 라울은 2009년 커피 생산국 바리스타로서는 가장 좋은 성적인 WBC대회 7위로 입상하였고, 2010년에는 무려 2위를 하면서 실력은 물론 여심을 사로잡는 외모까지 커피팬들에 각인시켜 왔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는 과테말라의 친구가 운영하고 있는 아까떼낭고 지역 농장의 커피를 가지고 조금은 복잡해 보이는 듯한 시연을 매끄러우면서도 속도감 있게 진행해 관중들의 환호를 듬뿍 받았다. 결국, 그 환호성에 걸맞게 작년 엘살바도르 챔피언에 이어 2년 연속 커피 생산국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의 신화를 이어가게 되었다. 벌써부터, Raul이 귀국 직후 출연한 TV 방송이며 인터뷰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 오는걸 보니, 문득 현장에서 그를 실컷 봐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Photo credit: Amanda Wilson and Rick Forrestal

호주 바리스타 Matt Perger, 월드 브루어스컵 트로피를 들어 올리다.

앞서 소개한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쉽이 에스프레소 음료를 중심으로 한 대회라면, 월드 브루어스컵 챔피언쉽World Brewers Cup Championship은 수동으로 추출한 드립 커피를 기본으로 한 일종의 핸드드립 커피 대회다. 대회측에서 제공한 원두를 가지고 7분간 3잔의 커피를 얼마나 맛있게 추출하는지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평가하는 의무 서비스와, 직접 준비한 원두와 도구를 사용해서 추출한 커피를 10분간 3명의 심사 위원에게 얼마나 잘 전달하는지를 평가하는 오픈 서비스로 나뉘어 예선전이 진행된다. 여기서 합산 점수가 높은 상위 6인이 결승전에 진출하게 된다. 올해 제2회 대회에는 총 23개국 선수가 참가해, 드립 커피에 대한 다양한 고민과 연습이 느껴지는 시연으로 긴장감 있게 예선전이 진행 되었다. 전반적으로 작년에 이어 하리오 드리퍼와 케멕스, 에어로프레스를 사용하는 참가자들이 여전히 많았고, 오픈 서비스에서는 작년에 비해 게샤Gesha품종의 커피와 케냐, 에티오피아 커피가 많이 시연 되었다.  또한, 커피를 추출하는 동안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스페셜티 커피에 대한 개인적인 철학이나 추출시 커피 미분에 대한 견해를 펼치는 참가자들이 눈에 띄었다.

한국 대표로 참가한 코어 랩Core Lab의 우상은 바리스타는 커피 추출에만 집중하다 보면 자칫 놓칠 수 있는 커피의 감성적인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본인이 발리 여행때 가장 맛있게 마셨던 커피 경험을 전달하고자 향기가 인상적인 에티오피아 네츄럴 커피와 해변을 테마로 한 테이블 세팅과 음악, 의상까지 준비해 주목을 받았다. 특히, 올해 특별히 한국에서 주문 제작된 브루어스컵 트로피는 그 독특한 모양새로 가장 많은 카메라 세례를 받기도 했다. 이번 월드 브루어스컵 챔피언쉽의1위 트로피는 호주 세인트 알리St. Ali의 촉망받는 바리스타 Matt Perger가 번쩍 들어 올리며 대회의 막을 내렸다. 커피의 미분과 물로 인한 맛의 변화를 설명하며 체를 사용하여 원두 가루를 걸러 낸 후 추출을 시작하였고, 본인이 원하는 최적의 맛을 추구하면서도 시연 내내 집중력 있게 고객 서비스의 끈을 놓치 않았던 그의 시연은 10분이 1분처럼 느껴질 정도로 흡입력이 있었다. 이후 소식통에 의하면 그날 그는 행사장을 나가는 순간까지 우승 트로피를 끝까지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한다. 🙂

Photo credit: Amanda Wilson and Rick Forrestal

독일의 Cory Andreen, 퍼펙트 게임으로 월드 컵 테이스터스 대회를 평정하다!

3잔에 든 커피 중 하나는 비슷한 듯 다른 커피다. 8분 안에 총 8세트 24잔의 커피를 맛보고 그 다른 컵 하나씩을 가장 정확하고 빠르게 찾아 내는 사람이 우승하는, 구경하는 맛이 남다른 대회. 큰 무대와 관중들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집중해 각자의 감각을 총 동원해야 할 뿐더러, 자신의 결과를 관중들과 함께 확인해야 하는 부담도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다른 대회에 비해 참가자들이 준비해야 할 것은 오로지 테이스팅 할 때 쓸 자신의 컵핑Cupping 숟가락 하나뿐이라는 사실은 이 대회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다. 덕분에 항상 참가자가 많은 편이고, 올해는 35개국 대표가 참가해서 열띤 경연을 벌였다. 첫 세계 커피 대회에 출전한 한국 대표  BLC Brothers 소속의 박수현씨도 예선전에서 8세트 중 5세트를 맞췄지만, 안타깝게 준결승에는 진출하지 못했다. 감각기관 컨디션에 특히 영향을 많이 받는 컵 테이스터스 대회의 경우, 전반적으로 시차의 부담이 없는 유럽 선수들이 좋은 성적으로 결승전에 진출하였고, 그 중에서도 독일 Café CK 의 Cory Andreen는 보기 드물게 8세트를 4분 이하에 모두 맞춰, 말 그대로 완벽한 우승으로 관중들의 찬사를 받았다.

Photo credit: Amanda Wilson and Rick Forrestal

깨알같은 대회 이모 저모

앞서 소개한 대회들 외에도 한국의 김진구씨가 대표로 참가한 체즈베/이브릭 챔피언쉽Cezve/Ibrik Championship도 독특한 이브릭 도구들과 선수들의 테마 의상으로 많은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또한 첫 시범대회를 가진 로스팅 챌린지Roasting Challenge의 경우, 이벤트장 내 커피 볶는 냄새를 진동 시키며 생두 선별부터 로스팅에 컵핑 심사까지 이어지는 실제 로스팅 과정을 모두 공개해 전문 커피 로스터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사실 이번 행사 중 필자가 틈만 나면 찾아갔던 곳은 WBC 대회장 옆에 있던 브루 바Brew Bar였다. 각양 각국의 스페셜티 커피 로스터들의 원두를 Marco사의 시스템을 사용해, 물 온도와 흐름을 조절해 가며 간단히 드립 커피를 만들어 행사기간 내내 언제든 무료로 시음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SF영화에서나 봄직한 독특한 호스를 손에 쥐고 진지하게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는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에서 왠지 어색한 미래의 느낌이 들어 살짝 웃음이 나기도 했다. 좋은 커피를 위해서 적당한 육체 노동은 미래에도 필요할 거란 생각이 들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여러모로 행사장에서 편안히 커피를 마시며 오며 가며 대화가 가능한 참새 방앗간 같은 공간이었기에, 나름 감사의 표시로 필자가 들고 간 한국 로스터의 커피도 바에 올려 행사장의 아침을 준비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눠 마셨다.

비엔나, 지친 커피인들에게 카페를 제공하다.

이렇듯 열정적인 커피 대회를 위해 비엔나에 모여든 커피인들에게 전반적으로 철 지난 메뉴 같은 느낌의 비엔나 커피는 그다지 강한 인상을 심어주지는 못한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멈춘 듯한 여유가 느껴지는 카페들이 아직 남아 있어 반갑기도 하고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루 종일 최고의 커피를 만들기 위해 애쓰거나 혹은 그 커피를 마시고 평가 하느라 지쳐가는 필자같은 이들이, 느즈막히 들러 달달한 아이스크림이 올라간 아이스 커피를 휘적대며 쉬어 갈 수 있는 넉넉하고 차분한 카페가 반가웠다고 해야 할까? 대회 기간 동안 필자처럼 지친 커피인들이 다녀 갔다면 아마도 카페의 공간과 역할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선사해 주었으리라. 그리고, 세계 커피인들이 잠시 들러 남기고 간 맛있는 커피와 그 열정을 발견한 비엔나의 누군가는, 지금쯤 ‘비엔나 블루 바틀 제2막’을 꿈꾸고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비엔나 커피 올드 앤 뉴

Published in Coffee Look, 2012 / Photo credits: Amanda Wilson, Rick Forrestal, 콩부인

2013년 월드 커피 이벤트는 종목을 나누어 5월에 멜버른과 6월 프랑스 니스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어제 막 선발된 한국의 대표 바리스타들을 포함한 전세계 커피인들이 모여 곧 두 도시에 어떤 커피와 이야기 거리를 남기게 될지…미리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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