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콩부인, Coffee Beanwife

커피 라이터, 콩부인입니다.

캘리포니아의 화사하고 열정적인 커피, Verve Coffee Roa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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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가을 공기가 마음을 술렁이게 만드는 주말 오후. 커피 한 잔 마시고 태평양의 석양을 보겠노라며 느닷없이 캘리포니아 남쪽을 향해 달렸다. 화사한 햇살과 공기에 절로 콧노래를 부르게 만든, 바로 그 커피집을 향해.

Verve 커피 바

샌프란시스코에서 약 한시간 반쯤 미국 고속도로 1번을 따라 내려가면 어느새 다다르게 되는 아름다운 해안 도시 Santa Cruz. 강원도의 어느 시내가 연상되는 다운타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건 검게 그을린 근육의 캘리포니아 남녀들이었다. 서핑 보드에 민소매 셔츠, 그리고 꽃무늬 두건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그들을 지나치며 은근슬쩍 내 목에 칭칭 감긴 머플러부터 풀어 헤친다. 고작 한시간 반 남쪽으로 내려왔을 뿐인데 이 곳의 햇살엔 아직 늦여름의 기운이 가득하다.

여러 리뷰를 통해 Santa Cruz 라는 도시의 커피를 1등으로 책임지고 있는 곳이라고 들었고, 샌프란시스코나 뉴욕과 같은 대도시의 멀티 로스터 샵에서도 종종 만나볼 수 있었던 Verve Coffee Roasters. 유난히 어두운 커피 포장지를 보며 안개가 뿌연 도시를 상상했었지만, 이 곳은 누가 뭐래도 구름 한점, 걱정 한점 없어 보이는 캘리포니아 해변의 화사한 도시. 바닷가에서 걸어서 불과 5분도 채 떨어져 있지 않은 길에 크게 “COFFEE”라고 쓰여진 간판이 바로 Verve 커피 로스터의 전신 카페와 로스터리. 카페 옆에 로스터기가 훤히 들여다 보이는 로스터리는 가만보니 로스터기만 남겨두고 모두 이사간 듯 보였다. 나중에 이야기를 듣고 찾아가 보니 근처 넓은 부지로 로스터리를 확장 이전해서 생두 창고, 로스팅 공장, 트레이닝 랩과 방문객을 위한 작은 커피바를 갖춘 일종의 커피 멀티 플렉스를 만들고 있었다

     

동네 사람이 아닌 것이 너무도 확연한 나의 차림. 어색한 듯 카페를 들어가 동정을 살피고는 뚫어져라 메뉴를 살핀다. 커피 바를 둘러 에워싼 원두 백들에서 위용이 느껴진다. 고심 끝에 세 대의 그라인더 중 가장 구미가 당기는 코스타리카 싱글(단일 원산지) 에스프레소 한잔과 프렌치 프레스로 내려주는 케냐 드립 커피를 한잔 주문했다. 검게 그을린 이 동네 사람들에 비해 커피 바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스탭들은 샌프란시스코 여느 바에서 본 젊은이들 처럼 젊고, 멋지고, 상냥했다.

여느 핸드드립 커피를 취급하는 카페들 처럼 케냐 커피를 받아들기 까지는 5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기름이 살짝 비치는 탁한 커피 국물이 어서 들이키고픈 충동을 불러 일으킨다. 프렌치프레스 특유의 지직 거리는 첫 모금을 지나 커피가 식어 가니, 묵직하면서도 둥글게 깎아진 잘 익은 과일들의 맛이 천천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맛보는 부드럽고 둥그스름한 케냐 커피. 기회가 된다면 종이 필터로 걸러진 드립 커피로도 한번 맛보고 싶다.

신기하게도 이 곳에선 드립 커피가 에스프레소 보다 먼저 나왔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라마르조코 Strada 기계 앞에서 아까부터 집중해서 샷을 뽑고 맛보고 버리고 있는 바리스타가 눈에 들어왔다. 분쇄된 커피의 무게를 재고, 포타필터에 담아 또 다시 예민하게 측정한 뒤에 리스트레토를 뽑아 내리는 동안 그룹헤드를 노려보고는, 추출된 그 잔을 나에게 넘겨줄 줄 알았다…하지만 그녀가 또 마시고 뱉어낸다. 그리고 오늘 샷이 조금 진하다며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는 두 잔을 더 추출한 뒤에야 나에게 한 잔이 넘어 왔다. 넘겨 주면서도 조금 탐탁치 않아하는 그녀.

한 모금 마시니 코스타리카 에스프레소 특유의 톡톡 떠지는 과일의 밝은 산미와 쫀득한 리스트레토의 식감이 급하게 입안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여운만 살짝 남기고 사라지는 깔끔함. 조금 타이트한 감이 있긴 했지만 마음에 들었다. 괜찮다고 한마디 건내고 이제 막 한잔을 끝내려는데 그녀가 이걸로 다시 마셔보라며 새로 뽑아 내린 에스프레소 한잔을 내민다. “이 맛을 뽑아내려고 했던건데…”라는 말과 함께 건내 받은 두번째 잔. 망설임 없이 한모금 들이키니 그녀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뭔가 빠듯하게 조여진 느낌의 첫 잔에 비해 맛의 여유를 찾은 밸런스가 살아난 그녀의 킬러샷! 상자속에 빽빽하게 담긴 과일들이 테이블 위에 넉넉하게 놓여진 느낌이랄까… 그녀에게 고맙다는 말과 너무 맛있다는 말을 두번쯤 하고는 결국 카페를 그냥 나오지 못하고 그 코스타리카 원두 한봉지를 계산하고 말았다. 게다가 그녀의 두잔의 레시피까지 고이 받아들고 말이다. 열정을 떠올리게 만드는 Verve라는 이름과 그 날 그녀의 커피 열정이 꽤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Verve 커피는 2007년에 바로 이 곳에서 작은 로스터리 카페로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2-3년간 미국 내 바리스타 대회에서 상위에 입상한 바리스타들과 그들의 원두를 취급하는 좋은 카페들로 인해 바이러스처럼 그 이름이 여기저기 퍼져 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 추세를 반영하는 듯, 최근 새로 오픈한 Verve 로스터리는 말 그대로  성장할 공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어 보였다. 트레이닝 랩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상패들과 깔끔하게 정돈된 생두 창고와 로스팅 실, 그리고 필자를 비롯한 그 곳의 커피를맛보러 먼 걸음을 한 손님들을 거리낌 없이 환영해주는 역시나 젊고 상냥한 그 곳의 스탭들에게서 그 가능성을 보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들의 원두를 사용할 카페의 바리스타들이 이 트레이닝 랩에서 Verve 스탭들의 커피 열정과 상냥함까지 배워 가기를 은근히 바라며…

큰 기대 없이 달려갔던 그 곳의 커피는 말 그대로 화사하고 열정이 가득한 Verve Coffee였다. 오늘은 필자도 Verve를 생각하며 레시피를 따라 그 날의 리스트레토를 만들어 보려 에스프레소 기계와 기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_=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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