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콩부인, Coffee Beanwife

커피 라이터, 콩부인입니다.

커피 커핑(Cupping)의 세계-맡고, 마시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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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은 건포도, 민트, 로즈메리, 카레, 호박, 토마토, 블루베리, 라일락…그리고 올리브, 허니브레드, 코코넛, 사과, 딸기, 블루베리 파이에 심지어 마리화나(?) 맛이 나며 시럽, 마시멜로우, 크림 같은 식감이라고 표현된 이 음료의 정체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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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미국 동부의 유명 로스터 카운터컬쳐(Counter Culture)의 커피 시음회에서 나온 세 가지 종류의 커피에 대한 평이다. 칠판에 적힌 이 설명만 보고 과연 커피임을 알아챌 이가 얼마나 될는지? 표현의 가이드라인 없이 다들 그저 본능에 충실한 소감을 뱉어냈기에 더 다양하기도 했고, 또 개인적으로는 한국인인 나와 미국인인 그들이 먹고 자란 음식의 차이로 말미암아 공감하기 어려운 평도 꽤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전문 테이스터가 아님에도 커피의 맛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려 노력하는 참석자들의 모습들이 꽤 인상적이었고, 동시에 같은 커피를 한국 사람들이 맛보았다면 어떤 어휘들로 저 칠판이 채워졌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커핑(cupping)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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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국에선 원두 품질에 자신 있는 인디카페나 로스터에서 앞서 소개한 것과 같은 커핑 이벤트란 걸 여는 걸 종종 볼 수 있다. 원래 커핑(cupping)은 일정한 순서와 방법, 조건 하에서 전문가들이 원산지별 생두 품질을 검사하고 등급을 평가하는 과정이다. 원칙대로라면 로스팅 정도, 물의 성분, 온도, 블라인드 테스트, 점수화 등 까다로운 조건들이 많지만, 최근에 이를 약식으로 진행하며 새로운 커피 테이스팅 문화로 소화하는 곳이 늘고 있다.

덕분에 약식 커핑 이벤트는 냉정한 커피 품평회이기보다는 좋은 커피들을 늘어놓고 덕담 같은 소감을 나누는 커피 시음회 분위기에 가깝다. 개인적으로 이런 편안한 분위기가 커피 애호가들의 닫힌 입을 열어 그간 ‘커피가 커피맛이지!’라는 말로 서럽게 봉인되었던 다양한 커피맛들을 해방시켜 주는 것 같아 무척 반가울 따름. Yay

사실 원두를 직접 갈아서 내려 마시는 커피 애호가라면 신선한 커피 원두를 득템했을 때 한 번쯤 그 원초적인 풍미를 느껴보고 두고두고 이야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바로 이 약식 커핑이기에 이번 기회에 나도 약식으로 소개해보려고 한다.^^

준비물: 강하게 볶지 않은 신선한 원두 10~12g, 커피 분쇄기, 타이머, 차가운 정수 물, 작은 컵(약 150~200ml 들이), 오목한 테이스팅용 숟가락, 커피가루를 걷어낼 여분의 숟가락, 커피를 뱉어내는 데 쓸 인기 없는 컵, 입을 헹궈낼 미지근한 물

다양한 향을 맡는다. (Sm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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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커피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세 컵중 다른 커피가 든 컵 하나를 식별해내는 트라이앵귤레이션(Triangulation)에서 향으로 식별했을 경우 정확도가 약 80%, 맛으로는 약 50%, 식감(마우스 필)에 의존했을 땐 약 20%라고 한다. 또한 직접 커피 향을 맡는 것 말고도, 보통 코감기에 걸렸을 때 음식 맛을 느낄 수 없듯이 커피 맛을 볼때 입안에서 향이 후각으로 전달되어 맛으로 인식하는 부분까지 생각하면 커피의 다양한 향을 이해하고 후각을 단련하는 것이 중요하단 이야기.

커피 향이라고 하면 보통 커피잔 위로 모락모락 올라오는 커피 향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본격적인 커피 테이스팅은 사실 원두 포장지를 열면서부터 시작된다. 커피 봉지를 열자마자 코를 묻고 깊이 들이마시면 원산지와 로스팅 스타일에 따라 의외로 다양하고 깊은 향들을 맡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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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본격적으로 분쇄 시작. 굵은 소금(천일염?) 굵기로 커피를 분쇄하는 순간 원두 안에 잠자던 향들이 가스와 함께 세상 밖으로 달려 나오게 된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도록 재빨리 오목한 컵에 옮겨 담고 본격적으로 킁킁- 킁킁-. 향이 옅은 경우 컵을 톡톡 쳐서 향을 끌어 올려도 좋다. 보통 프래그런스(fragrance)라고 하는 이 분쇄된 원두의 향은 몇 분 지나지 않아 금세 사라지기 때문에 분쇄 후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향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통 좋은 커피일수록 다양한 과일이나 꽃 향을 내는 경우가 많은데, 예를 들어 케냐 커피에선 싱그러운 복숭아나 열대과일 향, 인도네시아 커피에서는 쵸콜릿이나 허브향, 브라질 커피에선 아몬드 초콜릿 등과 같이 원산지, 품질, 신선도에 따라 복잡하고 다양한 향을 맡아볼 수 있다. 단 떠오르는 대로 메모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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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막 팔팔 끓은 물을 컵에 가득 붓고 타이머를 누른다. 이후 4분간 물에 젖은 커피 아로마(aroma)를 지속적으로 맡아보는데, 이 아로마의 화합물만 800가지가 넘는다고 하니 집중력을 발휘해 최대한 여러 가지 향을 찾아 보겠다는 욕심을 부려보는 것도 좋겠다. 보통 초반엔 사우나(?) 혹은 곡물이 연상되는 향이 코를 지배하는 경우가 많지만, 앞서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향이나 달콤함이 뜨거운 물을 만나 스멀스멀 콧속을 파고드는 경우도 많다.

4분이 지나면 커피를 꽁꽁 덮고 있는 커피 껍데기(crust)를 스푼으로 표면을 두세 번 휘저어 부순다. 이때 커피 껍데기 밑에 탈출대기하고 있던 아로마들을 놓치지 않도록 컵에 코를 바짝 대는 것이 중요한데, 마치 달려나오는 아로마들을 콧속 동굴로 빨아들이는 상상을 하면 이해가 쉬울듯하다. >_<; 그리고 바로 이어서 컵 위에 떠있는 커피 가루를 걷어낸 후 약 3~5분 정도 혀가 데이지 않을 정도로 커피 온도가 내려가기를 기다린다. 그 사이, 젖은 아로마의 기억을 상실하기 전에 얼른 메모하는 습관.

소리내어 마신다. (Slurp)

이제 본격적으로 커피의 풍미를 느껴볼 시간. 사실 앞의 절차로 봐선 프렌치프레스 커피를 추출하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커피를 마시고 삼키는 것이 아니라, 숟가락으로 살짝 떠서 최대한 혀 뒤에까지 골고루 뿌려준다는 생각으로 국물 마시듯 후루룹~ 소리 내 힘차게 들여 마신다. 대신 너무 힘차게 마시다 보면 사레들리는 경우가 많으니 힘 조절에 유의하시길.

전문 커피 테이스터 죠지하웰의 커핑 모습

이렇게 커피를 공기와 함께 골고루 혀 위에 뿌려주고 약 1-2초간 맛과 향을 느낀 후에 바로 뱉어낸다. 그리고 입안에 남는 커피의 후미까지 느낀 후에 기억나는 대로 메모를 한다. 다음엔 신맛과 단맛, 바디감(식감과 무게감)에 집중해서 다시 힘차게 들여 마신다. 초반에 정의가 안 되는 애매한 맛들은 잠시 입을 헹구고 재도전. 보통 커피의 온도가 식어가면서 신맛과 바디감이 뚜렷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온도별로 천천히 맛보는 것이 좋다.

커피를 말하다.(Talk)

보통 커핑 전문가들은 맛(flavor), 후미(aftertaste), 신맛(acidity), 바디(body), 밸런스(balance), 단맛, 깨끗함 등을 빠른 속도로 음미하여 항목별로 냉정하게 점수화한다. 하지만, 약식의 경우 점수 대신 과일이나 음식으로 연상되는 다양한 맛, 잔향과 깔끔함, 신맛의 밝기와 단맛의 정도, 식감으로 분류하여 떠오르는 어휘를 메모하는 것만으로도 바쁘기 마련이다.

‘잘 익은 복숭아와 다양한 후르츠 칵테일 맛, 오래도록 남는 단 향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깔끔한 입안, 날카롭지 않은 밝은 신맛과 황도의 단맛, 쵸콜릿 퐁듀 같은 묵직하고 부드러운 식감’ -케냐 피베리 커핑 메모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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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nter Culture 약식 커핑 메모지>

커핑이 끝난 후에 동료와 한껏 커피 수다를 떠는 것만큼 즐거운 마무리야 없겠지만, 커피 포장지에 적힌 맛의 설명과 비교해 보거나, 혹은 핸드드립으로 추출한 커피와의 차이점을 조용히 확인해 보는 것도 꽤 흥미롭다. 한가지 주의할 점은 이렇게 내공이 쌓이다 보면 일반인이 쉽게 느끼지 못하는 다양한 풍미를 느끼는 즐거움과 동시에 맛없는 커피로 인한 괴로움을 배로 얻게 될 수도 있다는 것. >_<;

내 커피 안에 감귤 있다. 당신의 커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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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꽤 점잖은 엘살바도르 커피 한 모금에 예전 퇴근길에 자주 사 먹던 감귤 3천원 어치가 불쑥 떠올랐다. 오렌지는 흉내 낼 수 없는 감귤의 향과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특유의 점잖고 깊은 단맛. ‘아! 이 커피는 겨울밤 나의 지친 하루를 달래주던 잘 익은 그 봉다리 감귤의 맛과 향이 아니던가…!’오늘따라 겨울 달빛도 귤의 빛깔이로구나…” -‘콩부인의 커피드립’ 중에서- >.<

원두커피를 직접 분쇄해 내려 마시며 커피를 깊게 음미하다 보면 기억을 자극하는 경험을 종종 하게 된다. 특히나 후각이 예민한 사람들은 냄새로 추억되는 과거(?)가 많아 괴로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가끔 맛과 향에 귀 기울여 본다면 추억이 아니더라도 그간 우리의 코와 입을 스쳐 간 수많은 과일과 좋은 음식들을 당신의 커피잔에서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커피맛을 아는 당신. 이제 ‘그 커피 무슨맛이야?’라는 물음에 ‘그녀가 무척 좋아했던 하겐다즈 스트로베리 아이스크림이 막 올려진 와플 맛이야…’라고 말하며 한번쯤 고개를 떨궈보자. 너무 자주하면 친구를 잃을 수도 있겠지만…^^;

*커핑 이벤트 정보 in NYC*

Counter Culture:http://counterculturecoffee.com/training-centers/new-york (무료)

Intelligentsia NY:http://www.intelligentsiacoffee.com/store/product/id/2072 ($10)

“골라읽는 재미가 있는 콩부인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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