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콩부인, Coffee Beanwife

커피 라이터, 콩부인입니다.

보스톤 비밀금고 Bloc11 Caf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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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그리고 음지와 양지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그 곳,’

보스톤 비밀금고 Bloc11 Café

아이폰 가상현실게임 We Rule에 폭 빠져들어 카페로 가득찬 킹덤을 꿈꾸며 소파에 누워 열심히 딸기재배에 한창인 콩부인.  문득. ‘이렇게 돈 모아서 뭐하나. 짓고 싶은 그럴듯한 카페도 없는걸…Bloc11 같은 카페를 지을 수만 있다면 손가락이 부러지도록 밤새 콩재배 할 자신이 있다구!’ (참고로 콩은 매30분마다 재배해줘야 함)

맞다. Bloc11!!

돌로지은 작은 마을회관 같은, 하지만 가상현실 게임에서나 있을 법한 그런 카페.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은밀한 구석자리를 찾아드는 어둠의 친구들과, 유난히 창가에 집착하는 해맑은 양지인 모두를 만족시켜 줄 수 있는 그 곳. 보스톤의 Bloc11카페가 해외 커피가게 1호로 낙점되는 순간. 봄볕이 바람과 인간 옷 벗기기 내기라도 한 듯한 일요일 오후, 그렇게 Bloc11을 떠올리고는 잠시 아이폰을 꺼둔 채로 게임 세상에서 빠져나와 레알(Real) 세상 속 보스톤 비밀금고로 향하고 있었다.

활짝 열어젖힌 창가 자리들과 간만에 가득찬 마당좌석들, 그리고 마실나온 동네 큰 개들과 가로수를 촘촘히 포박한 자전거들이 말해 주듯 그저 평화롭고 눈부신 하루.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항상 그렇듯 골똘히 메뉴를 고심하던 콩부인.  ‘그래! 이런 날은 핸드드립 커피지!’ 하지만 조금은 북적대는 카페를 보며 ‘행여 스탭들이 귀찮아하진 않을까?’ 하는 괜한 걱정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살짝 말을 건네 본다. 하지만 왠걸? 귀여운 얼굴의 씩씩한 점원 아가씨가  ‘Why not?’ 이라며 흔쾌히 커피 종류를 선택해보라고 하자 ‘그럼, 오늘은 in season(제철 커피콩을 의미) 엘살바도르 커피로!’라며 급 상기된 목소리로 대답하는 소심함이란…하지만 뭐 어때? 덕분에 이 좋은 봄날, 요즘 맛있다고 소문난 Intelligentsia(인텔리젠시아)커피를 신의 물방울 속 디켄터 분위기의Chemex(케멕스)드립으로 맛 볼 수 있게 됬으니…

잘했어. 콩부인 나이스! lol

자, 드디어 씩씩한 그녀의 케멕스 드립 시작. 카메라를 들이대자 자세한 설명까지 곁들여 주는 센스…그런 그녀의 손길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는 모처럼만에 날카로운 눈빛. (-_-)++  먼저 머그에 뜨거운 물을 부어 덥혀 놓고, 자리를 옮겨 약 50g 의 커피를 아까운 줄 모르고 와르르르 그라인더에 쏟아붓는 그녀. 적당히 굵은 사이즈로 그라인딩한 후에 부채만한 크기의 화려한 케멕스 전용 페이퍼를 살짝 물에 적시어 종이필터의 잡내를 없애주고는, 뜨거운 물을 살짝 부어 뜸을 들인 후 총 600ml의 물을 본격적으로 손목을 휘돌리며 부어준다. 약3-4분 정도 케멕스 글라스 바닥을 천천히 채워가는 드립커피를 바라보며 ‘이러다 오늘 내로 커피 마시겠니…’하며 조급증 내는 것도 잠시. 시나브로 채워진 커피는 일찌감치 덥혀 두었던 대형 머그로 옮겨져 안달난 콩부인 손에 안착.

드립의 노고와 처음 접하는 커피에 예의를 표하느라 코를 들이대고 킁킁대더니, 한 모금만 살짝 머금어 천천히 혀 위에 올려놓고는 무아지경으로 빠져드는데… (신의 물방울 재연중ㅋㅋ) ‘아아- 향긋한 과일향은 마치 겨울날 밤 아빠가 사다주신 감귤 한 봉지를 떠올리게 하고, 이 적당한 밀도와 입안 가득 퍼지는 상큼함은 마치 ’차보다 커피’를 연상케하는구나! ‘-_-;; 그렇게 맛에 감탄, 또 감탄하며 자신도 모르게 슬금슬금 양지인들의 창가로 다가가고 있었다.

활짝 열어젖힌 창가에서 한껏 늘어져 광합성을 하며 되도 않는 일들을 붙들고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 옆에 바짝 붙어 앉아 향긋한 커피를 홀짝대며 한국의 커피가게를 음미하는 외국인 1인. 정체모를 향수병과 관광객 중간모드에서 한껏 기분이 좋아지는 통에 지나가는 개들에게 하이파이프까지 시도하는 콩부인. 아마도 적당히 이국적인 카페에서 한껏 여유를 부리는 자신의 모습이 즐거워 오랜만에 ‘오바’라는걸 하고 있는게 아닐런지…

게다가 때마침 가볍게 주문했던 초식메뉴, 스윗포테이토 샌드위치도 때맞춰 나와주니 어찌 아니 기쁠수가…뻔하고 홀쭉한 채식 메뉴는 가라! 살짝 빵을 들춰보니 고구마, 시금치, 사과, 이탈리아 양파, 고트치즈 등등…달콤한 고구마에 온갖 야채가 든든하게(?) 어우러져 있어 이걸로는 호리호리한 채식주의자는 절대 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하지만 일단 한입 베어무니 달콤상큼한 맛에 기분은 다시 한 번 대폭 상승하고..

오랜만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기분좋게 광합성을 하고 나니 음지 속 양반들은 지금 뭘 하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우리나라 마을금고쯤 되는 동네 은행을 재치있게 개조해서 비밀금고들을 세미나실로 신분전환시켜 놓으니, 조용하게 최대한 구석으로 파묻히고 싶은 친구들에겐 더할나위 없는 안식처가 되어있었다. 슬그머니 일어나서는 카페 키친바의 조금은 쓸쓸한 분위기의 한 여인을 지나, 좀 더 깊숙이 금고방을 찾아 들어가 비밀결사대라도 조직하는 듯한 청년그룹들을 슬쩍 훔쳐본다

헌데 느닷없이 등뒤에서 들려오는 ‘이것도 좀 봐요….’ 하는 희미한 목소리.  화들짝 놀라 돌아보니 홍대에서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한 여인1이 Bloc11의 가장 깊고 깊은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게 아닌가? 조용히 자신이 앉아 있는 의자의 아래를 가르키며 개인금고를 쌓아 만든 거란 걸 알려주고 싶어하는 것 같다. 가까이 들여다 보니 열어보면 서너개의 금고가 그 안에 더 들어있을 것만 같은 그런 철제비밀금고가 아니던가…정말 멋지군!

하지만 그보다도 수줍게 말을 건내줬던 그녀에게 보답하고자 ‘금고보다 네가 더 멋져.’라며 카메라를 집어드니 장단맞춰 슬그머니 책을 집어드는 그녀… 하하하. 순간 그녀에게 정말 반해버린 나. 진정한 Bloc11 카페 훈녀가 아니던가. 그녀 때문이었을까? 항상 가장 깊고 어두웠던 그 자리가 그 날 따라 유난히 밝아 보이던 이유.

아마도 그 날 그 곳에서 우린, 잠시 음지와 양지를 바꿔 앉아 있었던 것은 아닐런지…

추천코스: 보스톤, MIT, 하버드 관광에 지칠 때쯤 한국마트와 중국집이 모여있는Somerville에 들러보자. Bloc11은 한국마트 바로 옆에 위치.

주소 11 Bow Street, Somerville, MA 02143, USA

웹사이트: http://www.bloc11.com

*숨어있는 카페들을 소개하는 커피잡지, ‘커피가게’ 5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골라읽는 재미가 있는 콩부인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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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spon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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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말 들러보고 싶어지는 곳인 것 같습니다.^^
    제 블로그에 이미지와 글을 옮겨도 괜찮을까요?
    콩부인님 블로그와 커피가게 출처 모두 기재해 놓을게요.
    좋은 포스팅 감사합니다~
    자주 들르게 될거 같아요. 즐겨찾기 완료! ㅎㅎ

    젠뜨

    August 10, 2010 at 4:36 am

    •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요새 바쁜일이 생겨서 업데이트가 좀 늦고있지만, 조만간 또 가열차게 업데이트할 예정이니 자주 들러주세요. 🙂

      공유해주셔서 고맙고, 저도 놀러갈테니 나중에 블로그 주소 하나 남겨주세요. ^^

      Beanwife

      August 10, 2010 at 4:58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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