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콩부인, Coffee Beanwife

커피 라이터, 콩부인입니다.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쉽 즐기기(커피와 피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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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워져서일까? 요새 부쩍 에스프레소 앓이가 늘었다. 얼마전 단골 카페에서 코스타리카 싱글 오리진(single origin) 커피로 시험삼아 뽑은 다채로운 맛의 에스프레소에 입을 댄 이후로 더 심해진 듯 하다. 덕분에 드라마 대신 팝콘을 씹으며 올해와 작년의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쉽 경기 영상을 보기에 이르렀으니… =_=;

인당 15분씩 주어지는 한편의 리얼리티 쇼. 준결승까지는 솔직히 종종 하품이 나올만한 경기도 있었지만 6명이 겨루는 최종 결승에서는 그래도 소위 말하는 엣지(edge)있는 모습들을 자주 볼 수 있어 꽤 흥미진진했다. 헌데 그 경기 영상 중에 단연 15분간 눈과 귀는 물론, 마음마저 잡아끄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바로 2010년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 마이클 필립스(Michael Philips, 이하 마이크라고 호칭).

몇달 전 그가 WBC(World Barista Championship)에서, 그것도 런던에서 열린 이 대회에서 그간의 유럽 우승자들의 맥을 끊고 미국 대표로 우승한 이후에 여기저기서 그의 인터뷰를 보며 커피에 진지한 그의 태도와 가치관이 멋지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다. 하지만 그의 우승 이유에 대해선 그저 ‘맛있게 만들었겠지…’ 라는 아주 무식한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대회 영상을 보고 그냥 맛있게만 만든 건 아니라는걸 뒤늦게 깨닫게 되다니… 게다가 지난 주말에 서울 카페쇼에서 한국 대표를 뽑는 바리스타 대회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앞으로 이 WBC대회를 관전할 커피러버들을 위해 수다를 좀 떨어볼까 한다.

WBC는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의 커피 버전? >.<;

WBC(World Barista Championship: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쉽)은 1년에 한번 열리는 일종의 국제 바리스타 올림픽. 자신이 선택한 커피로 만든 에스프레소/카푸치노/시그너쳐 드링크(에스프레소를 바탕으로 한 바리스타 특선 드링크) 이 세가지 음료를 4명의 센서리(sensory) 심판관에게 15분간 멋지게 맛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음료를 준비하는 과정을 날카롭게 지켜보는 2인의 테크니컬(technical)심판관과 헤드저지(head judge)까지 포함하면 심사위원만 총 7명인 셈. 1인이 출전하는 싱글 피겨스케이팅 경기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듯 하다. 겸사겸사 우리 김연아 선수를 떠올려본다. ^_^

먼저 사진 오른쪽에 나란히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맛보는 4인이 바로 센서리 심판이다. 기본적으로는 음료별 채점표에 맞춰 각 커피의 신맛/단맛/쓴맛의 밸런스와 바디감/마우스필 같은 음료의 촉감, 그리고 크레마와 우유거품의 품질과 시그너쳐 음료의 창의성, 용기 및 악세사리, 프리젠테이션 등을 세분화 해서 골고루 평가한다. 피겨로 말하자면 연기 수행 하나하나를 평가하는, 점수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바로 ‘그’ 심판들인 셈.

그리고 사진 왼쪽에 서 있는 두 남자가 바로 테크니컬 심판. 커피 추출시 바리스타 옆에 딱 붙어서 추출 전후로 청소는 잘 하는지, 엎지르지는 않는지 계속 관찰하며 세세한 기술적 요소를 평가하는 기술심판 2인이다. 특히 바리스타가 탬핑할 때마다 함께 앉았다 일어서는 그 분들! ^^ 그리고 위의 기술심판과 센서리 심판 중간에 서있는 1인이 바로 헤드저지(수석심판)이다. 단, 헤드저지도 평가지에 점수를 내긴 하지만 최종 점수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WBC 평가지)

각국 선발전을 통해 뽑힌 50여개국의 바리스타 대표들은 이런 까탈스러운 심사를 거쳐 예선과 준결승을 넘어 결승 6인으로 좁혀지게 된다. 따라서 보통 결승까지 가는 바리스타들은 같은 음료로 3회 연속 이 긴장된 경기를 치루게 되는데, 점수를 보면 결승보다 준결승 때 점수가 높은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당연하지만 챔피언이 되기 위해 3일간의 집중력과 체력은 당근에 당근이라는 이야기. 사실 2010년 바리스타 챔피언쉽의 마이크 필립스의 경기가 그랬다. 준결승에서의 여유가 결승때는 눈에 띄게 없어진 느낌이 들길래 점수를 확인해보니, 정말 놀랍게도 준결승때 점수가 결승때 보다 훨씬 높았더라는… (사실 준결승때 점수가 압도적이었다는 것도 역시 놀라운 점)

출처:WBC 홈페이지. 사진 클릭시 해당 문서로 이동합니다.

어떤 점이 그리 뛰어났던 걸까?

내 나름대로 그의 대회를 몇회 돌려보며 정말 인상적이었던 점은 당연히 커피의 맛도 있었겠지만, 그가 15분간 흥미로운 음료 컨셉을 심판들로 하여금 딴생각 할 틈을 주지않고 논리정연하고 인상깊게 전달하는 모습이었다. 그의 에스프레소/카푸치노/시그너쳐 드링크는 모두 코스타리카의 같은 농장의 생두를 사용한 대신 각각 다르게 프로세싱(processing)한, 세가지 다른 맛의 커피라는 흥미로운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바로 현재 커피업계의 앞선 트렌드인 ‘커피  프로세싱(수확한 커피 체리안에 든 생두를 꺼내 말리는 과정을 말하는데, 방법에 따라 같은 생두임에도 맛의 차이가 생김) ’이라는 조금은 어려운 커피지식을 고객들에게 알기 쉽게 전달한 것이다. 각 커피별 차이점을 듣고, 앞에 놓인 가이드를 읽어가며, 이를 직접 맛으로 느껴볼 수 있다니…이런 황홀한 커피 교육은 정말 내가 좀 받고 싶은데…>_<; 말그대로 세계 커피사절인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의 기본기를 제대로 보여준 경기내용이 아닐는지.

구체적으로 그가 경기에 사용했던 코스타리카 Coope Dota의 커피는 1)수세식(washed)커피로 만든 에스프레소, 2)허니(honey) 또는 펄프드 네츄럴(pulped-natural)이라 불리는 방식으로 가공된 커피로 만든 카푸치노,  3)앞의 두가지를 포함해 자연건조(natural) 커피까지 한꺼번에 맛볼 수 있는 시그너쳐 드링크 이렇게 세가지. 아마 모든 바리스타들이 그렇듯 그도 좋은 재료를 찾아 최고의 기술로 최상의 맛을 내는 노력을 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인상깊었던 건 이런 특별한 원재료를 공급한 커피 농가의 앞선 기술과 노력을 그가 서빙하는 매 테이블에 강조하며 올려놓았다는 것. 생각할수록 가슴이 따뜻해지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아마 내가 농부라면 이런 요리사에게 가장 좋은 달걀은 꽁꽁 숨겨놨다 몰래 빼주었을거다.

그것도 모자라, 그가 감행한 모험 한가지가 더 있다면 경기중에 그라인더의 원두통을 교체한 것. 경기용 그라인더는 두 대 인데, 그가 사용할 커피는 세가지였기 때문이다. (대부분 바리스타들은 한 두가지의 원두만 사용) 게다가 각각 다른 프로파일로 추출까지 해야 하다니… 후아~ 분명 그로써도 큰 모험이었을꺼라 생각들지만 오히려 그런 도전이 없었으면 결과가 어떻게 됬을까? 작년 WBC 3위에 그치지 않고 1년만에 발전된 모습으로 선보인 그의 똑똑하고 진지했던 커피와 도전정신이 결국 이렇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월드 챔피언 타이틀로 보상 받았은게 아닐까? 마치 오래전부터 챔피언의 자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던 것 처럼… 문득 김연아 선수의 2009년 세계선수권 대회 우승이 오버랩되는 순간.^^;

이제 내년 2011년 콜롬비아 Bogota에서 열리는 대회에선 어떤 한국의 바리스타가 이런 강렬한 인상을 남길지… 미리 상상해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마이크의 결승전 영상(아래). 유난히 진지한 그의 분위기와 리드미컬한 음악이 동선의 전환점마다 속된 말로 ‘칼맞춤’ 되어 있어 나도 모르게 그와 함께 헤드뱅잉을 할 정도. 특히 그가 전체적인 음료 컨셉에 대한 설명을 마치며 음악이 전환되는 시점에 주목! (1분 20초 즈음, 음악 변화를 주목하시길…) 커피로 락음악을 연주하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바리스타 챔피언쉽이 종합예술로 승화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보는 1인.

영상 삽입이 안되어 사진을 클릭하면 해당 영상으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이번 WBC에서 보는 내내 미소를 머금게 했던 또 한사람. 당당히 결승 2위를 차지한 커피 생산국가인 과테말라 대표 Raul Rodas의 경기영상. 외모만큼 시원서글한 그의 프리젠테이션과 게이샤 원두로 준비된 그의 커피를 마음껏 상상해 봐도 좋겠다. ^^

영상 삽입이 안되어 사진을 클릭하면 해당 영상으로 이동합니다.

#첨부: 바리스타 대회를 준비하는 미래 바리스타 챔피언 도전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얼마전 몇몇 WBC 수상자들이 자신의 대회 성적표를 자발적으로 공개했네요. 정말 쏘쿨~한 그들입니다. 그 중 2010 WBC챔피언 Michael Philips의 성적표와 2009년 WBC챔피언 Gwilym Davies 성적표.

한국 바리스타의 선전을 기원하며…^^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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