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콩부인, Coffee Beanwife

커피 라이터, 콩부인입니다.

커피는 원래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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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생각의 에너지다.’ 책의 첫장부터 마지막장 까지 나를 온전히 지배한 구절이자, 이 책을 단숨에 읽어 내리게 만든 커피의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총 세잔의 커피를 마셨다. 책의 첫장을 열기 위해 책 제목에 맞춰 쓴맛이 좀 더 도드라지는 원두를 찾아 한잔 내렸다. 유치하지만 나름 새로운 책을 만나는 작은 의식을 치루고 싶었던 것 같다. 책 초반부터 자전거를 타는듯한 시원한 문체에 작가의 즐거운 상상이 더해진 커피 역사를 따라 가느라 채 식지도 않은 커피를 나도 모르게 꿀꺽꿀꺽 삼켜댔다. 입안 가득한 쌉쌀함이 그 옛날에 커피를 싣고 항해길에 올랐을 네덜란드 상인을 떠올리게도 했다. 계속되는 상상과 궁금증들… 과연 그 옛날 아라비아의 커피는 어떤 맛이었을까? 이보다 훨씬 더 쓴 커피였을까? 책 읽는 속도 만큼이나 빠르게 첫잔을 소비해 버린 나는, 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의 재기발랄함이 느껴지는 삽화 속 정약용 선생의 커피를 보고는 다시 두번째 커피물을 끓여야 했다. 이번엔 달콤하고 향긋한 아프리카 커피로 말이다.

이제 작가는 지난 10여년 새 빠른 속도로 변해 온, 그리고 아직도 한창 변혁이 진행중인 한국의 커피 문화를 조목조목 이야기 한다. 특히, 그 사이 홀로 커피를 홀짝이기 시작했거나, 밥보다 커피를 더 자주 마시게 된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만한 우리 커피 이야기 말이다. 그 궁금했던 커피 얘기를 작가가 애정을 가지고 조곤조곤 설명하고, 애매한 커피 용어는 정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인스턴트 커피와 스타벅스를 거쳐 핸드드립과 자가배전 커피를 마시게 된 작가와 내가 ‘우리’로 연결되는 순간.

하지만 작가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공정무역 커피 사업을 진행했던 경험과 신념을 바탕으로 그는 이제 ‘우리’와 ‘커피 생산국’을 연결하려 한다. 커피 한잔도 착하게 마시라며 무턱대고 강요하기 보다는, 먹거리와 공생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공감해주길 바라며 공정무역의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말한다. 한국이 공정무역 커피의 미래라는 기분좋은 천명과 함께… 그간 공정무역 커피를 마시며 수년간 축적해온 작가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책 중반을 넘어서자 이번엔 커피로 먹고 살아볼까 하는 이들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특히 ‘어느 바리스타와의 인터뷰’를 읽으며 바리스타로 먹고 사는 이들에게 있어서 커피는 과연 얼마나 쓴 음료인지에 대한 생각에 미간을 좁히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아닌 수천명의 남을 위해 세심하게 고르고 만들어 마음으로 전달해야 하는 커피. 과연 그 커피가 바리스타, 혹은 카페 사장을 꿈꾸는 당신의 리스트에 분명히 적혀 있는지를 작가는 짬이 날 때마다 묻는다. 하지만, 그렇게 심각한 고민으로 치닫는가 싶을 무렵, ‘이제는 릴랙스~’라고 말하듯이 작자는 자신의 서재를 열어 커피에 관련된 책과 영화를 아낌없이 소개하며 책을 마무리 한다.

진지한 고민과 릴랙스 사이의 커피 휴식을 놓친 나는, 마지막 장을 덮고서야 책의 여운을 품고 세번째 커피를 내렸다. 비교적 큰 고민없이 준비한 세번째 잔은 주로 미국과 유럽의 커피 애호가들이 사용하는 에어로프레스(aeropress: 주사기와 비슷한 원리로 손으로 직접 압력을 가해 커피를 추출하는 도구) 커피였다. 미국의 어느 로스터에서 직접 무역(direct trade:대안 무역 중 하나로 중간 상인 없이 커피 로스터가 직접 농가와 거래하여 고품질 생두를 구입하는 형태)으로 소싱해서 볶아낸 코스타리카 커피를 시간과 무게를 조절해 가며 에어로프레스로 세심하게 짜냈다. 책의 여운만큼 진하고 풍부한 향미의 코스타리카 커피를 추출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여기서 잠깐, 작가의 말대로라면 이 서양의 젊은 커피 문화가 결국 지금 이렇게 태평양 너머의 한국과 연결되고 있는 것이 아닐는지…

커피는 원래 쓰다? 개인적으로 완전히 동의하기는 힘든 제목인 것 같다. 게다가 작가가 이 책을 통해 소개한 커피의 맛은 내겐 그렇게 쓰지만도 않았다. 자칫 쓸 수도 있지만, 쓰지 않게도 할 수 있다는 말로 이해했다면 내가 너무 긍정적인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커피가 내게 준 에너지가 이토록 긍정적인 것을…

* 이 책을 읽는 동안 저는 Pat Matheny Trio의 ‘Day Trip’ 앨범과 양양의 ‘시시콜콜한 이야기’앨범을 돌려 들었군요.

* 이상 박우현 님(@Coffeens)의 책, ‘커피는 원래 쓰다’를 읽고 쓴 저의 첫번째 책 리뷰입니다. 커피를 비롯한 건축과 영화, 인문사회학을 아우르는 작가의 깊이 있고 간결한 문장들이 책을 읽는 것에 그치지만은 않게 만들더군요. 비슷비슷한 커피 기술서들에 지친 커피 애호가들이 줄커피 하며 읽기 좋은 커피 문화서라고 소개하고 싶네요. 그 외 줄커피하기 좋은 커피 책이 있으면 언제든 추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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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Beanwife

January 25, 2012 at 4:55 am

2 Respon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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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녕하세요!
    우연히 샌프란시스코 카페검색하다가 블로그를 보게 되었어요.
    또한 brewer cup 대회소식도 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드립바리스타로 일하고 있고,
    지금은 미국에 가족이 있어서 방문겸 커피투어중입니다..
    대회 규정을 읽어보았는데요..혹 저같은 여행객은 참가자격이 될까요..지역예선에라도요..
    resident도 아니고 어디회사소속도 아니고 자격조건이 안되는거 같긴한데요..
    대회 심판도 하셨다고 하시니 멋지십니다.
    혹 정보를 주실수 있으신지요?

    Mia

    January 31, 2012 at 11:02 pm

    • 먼저, 너무 답글이 늦어서 죄송하네요. 미국 대회의 경우 대회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법적으로 인정된 미국 거주민이어야 하고 지역 예선의 경우 일을 하거나 거주한 해당 지역 예선에 참가할 수 있습니다. 그 외 18세 이상이어야 한다는 조건 말고는 회사에 소속되야 하거나 하는 조건은 없습니다. 다행히 올해부터 한국에서도 브루어스 컵 대회가 시작되었으니 내년 대회에 꼭 참가하셨으면 좋겠네요.

      Beanwife

      April 19, 2012 at 2:32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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